매 시즌 새로 출시되는 축구팀의 유니폼은 전 세계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자국 리그나 챔피언스리그 경기장을 찾는 팬들 대부분은 자기가 응원하는 구단의 이름과 로고, 그리고 메인 스폰서의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유니폼을 입고 응원전을 펼치죠.
이제는 유니폼 가슴 한복판에 대기업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유니폼에 상업적 광고를 넣는 것은 축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금기'로 여겨졌습니다.
순수한 스포츠 의류였던 유니폼이 어떻게 거대한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이 스폰서십의 시작이 축구 산업의 지형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감히 유니폼에 장사를 해?" 단색 작업복 같던 초기 유니폼의 시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축구 유니폼의 목적은 오직 하나,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니폼은 두꺼운 면 소재로 만들어진 단색 셔츠였고, 가슴에는 오직 구단을 상징하는 엠블럼이나 지역을 나타내는 문양만 외롭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축구계 유권자들과 축구협회(FA)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상업주의에 물드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기업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돈을 받는 행위는 스포츠 정신을 더럽히는 저급한 상술로 치부되었죠.
제가 만약 그 시절에 살던 구단주였다면, 당장 선수들의 월급을 줄 돈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유니폼에 광고를 넣는 것은 절대 안 된다"라는 협회의 완고한 규정에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단들의 재정난이 심해지고 축구가 점점 인기를 얻어가면서, 유니폼 가슴 공간을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혁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반항아들의 시도: 독일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브라운관의 충격
유니폼 상업 스폰서십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사건은 1973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재정 위기에 몰려 있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Eintracht Braunschweig)'라는 구단이 독일의 유명 리큐어(술) 브랜드인 '예거마이스터(Jägermeister)'와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예거마이스터는 구단에 거액의 후원금을 주는 대가로 선수들의 유니폼 가슴에 자신들의 상징인 거대한 사슴 로고를 새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독일축구협회(DFB)는 즉각 "유니폼에 기업 광고를 넣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며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수완 좋은 구단 경영진은 꼼수를 발휘했습니다.
구단의 공식 엠블럼 자체를 예거마이스터의 사슴 로고로 아예 바꿔버린 것입니다! 협회도 공식 엠블럼을 가슴에 달겠다는 구단의 고집을 막을 명분이 없었고, 결국 사슴 로고를 단 유니폼이 그라운드를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발한 반항은 전 세계 축구계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고, 유니폼이 엄청난 광고 효과를 가진 마케팅 자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냈습니다.
잉글랜드의 전파와 현대 스포츠 마케팅의 폭발적 성장
독일에서 시작된 유니폼 광고의 바람은 금세 축구 종가 잉글랜드로 넘어갔습니다.
1979년, 잉글랜드의 리버풀 FC가 일본의 전자기업 '샤프(Hitachi)'와 계약을 맺으며 잉글랜드 1부 리그 최초로 유니폼 가슴에 기업 이름을 새긴 구단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방송국(BBC, ITV)에서 "상업 광고가 노출되는 유니폼을 입은 경기는 TV 중계를 할 수 없다"라며 강하게 반발해 TV 중계용 유니폼과 일반 경기용 유니폼을 따로 입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TV 시청률이 폭발하고 유니폼을 사 입는 팬들이 늘어나자, 방송국과 축구협회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용품사와의 거대한 키트 스폰서십 계약과 기업들의 가슴 스폰서십은 구단에 매년 수천억 원의 수입을 가져다주는 핵심 재원이 되었습니다.
결국 가슴 속 로고 하나가 구단이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고 최첨단 구장을 지을 수 있게 만든 동력이 된 셈입니다.
글쓴이의 한마디
매년 여름마다 새로 출시되는 응원 구단의 유니폼을 구매하며 가슴에 새겨진 로고를 마주할 때,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이 로고 하나를 달기 위해 구단과 축구협회가 징계와 소송을 불사하며 싸웠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제가 이 유니폼 스폰서십의 역사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고집도 귀중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 혁신가들의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화려하고 높은 수준의 현대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핵심 요약
초창기 축구 유니폼은 순수한 단색 의류였으며, 상업적 광고를 새기는 것은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금기사항으로 여겨졌습니다.
1973년 독일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구단 엠블럼을 술 브랜드(예거마이스터) 로고로 바꾸는 기발한 수법으로 세계 최초의 유니폼 가슴 광고를 성사시켰습니다.
1979년 리버풀 FC의 히타치 스폰서십을 거쳐 TV 중계와 결합된 유니폼 스폰서십은 오늘날 구단 운영 재원의 가장 거대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13편에서는 맨손으로 공을 막아내던 거친 시절을 지나 손가락 부상을 막아주는 첨단 장비가 되기까지, '골키퍼 장갑의 역사와 과학'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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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기억하는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거나 레전드로 꼽히는 유니폼 디자인(또는 기억에 남는 가슴 스폰서 로고)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인생 유니폼을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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