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 같은 명문 구단들은 전 세계에 수억 명의 팬을 거느린 거대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축구 클럽들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흔히 축구 종가라고 하면 런던의 화려한 구장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은 영국의 한 한적한 탄광·철강 도시의 청년들이 "겨울에 할 짓이 없다"라며 만든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현대 축구의 규칙이 정립되기도 전, 저마다 다른 규칙으로 공을 차며 툭하면 난투극을 벌였던 초기 클럽들의 황당하고도 흥미진진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크리켓이 끝나면 뭐 하지? 세계 최초의 클럽 '셰필드 FC'의 탄생

세계 축구 관리 기구인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식 인정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은 1857년에 창단된 영국의 '셰필드 FC(Sheffield F.C.)'입니다. 이 클럽을 만든 사람들은 원래 축구 선수가 아니라 '크리켓' 동호회 회원들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크리켓은 봄과 여름에 즐기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지만, 가을과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 때문에 경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셰필드의 청년 크리켓 선수였던 내다니엘 크레스윅과 윌리엄 프레스트는 "겨울용 체력 단련 공놀이를 만들자"라며 의기투합했고, 이것이 인류 최초의 축구 클럽인 셰필드 FC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살던 청년이었다면,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갈 곳이 없어 좀쑤셔하다가 이들이 만든 클럽 모집 공고를 보고 반갑게 달려갔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의 위대한 역사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비시즌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려는 취미 생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리 동네는 손 써도 되는데?" 규칙이 없어 벌어진 대혼란

클럽은 멋지게 만들었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통합된 공식 규칙이 아예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각 대학교나 지역마다 규칙이 완전히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느 학교는 럭비처럼 공을 손으로 쥐고 뛰어도 된다고 했고, 어느 동네는 발로만 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상대방의 정강이를 걷어차서 넘어뜨리는 '해킹(Hacking)'이 합법적인 전술로 통하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서로 다른 동네 클럽이 만나 경기를 하려고 하면, 공을 차기도 전에 "너네 규칙이 맞냐, 우리 규칙이 맞냐"로 말싸움을 하다가 결국 육탄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축구의 정의가 달랐으니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했습니다.


셰필드 규칙의 등장: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닦다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클럽인 셰필드 FC는 1858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규칙인 '셰필드 규칙(Sheffield Rules)'을 제정합니다. 이 규칙은 현대 축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코너킥과 프리킥의 도입입니다.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거나 반칙이 선언되었을 때 경기를 재개하는 방식을 최초로 규정했습니다. 둘째는 크로스바(골대 상단 가로대)의 설치입니다. 

이전에는 양쪽에 장대 두 개만 세워두고 그 사이로 공이 높이 지나가기만 해도 골로 인정되어 분쟁이 많았으나, 셰필드인들은 줄을 팽팽하게 묶어 가로대를 만들어 골의 기준을 명확히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헤더(헤딩)의 시작입니다. 손을 쓰지 못하게 하자 머리로 공을 받아치는 기술이 이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처음 이 초기 규칙들을 접했을 때 저는 깊은 감탄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코너킥이나 골대의 가로대가, 사실은 고대 청년들이 경기 중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공을 차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짜낸 규칙이었다는 사실이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셰필드 규칙은 훗날 1863년 영국축구협회(FA)가 통합 규칙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뼈대가 됩니다.


라이벌의 탄생과 전 세계로 퍼진 클럽 문화

셰필드 FC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자, 불과 3년 뒤인 1860년 인근 지역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클럽인 '할람 FC(Hallam F.C.)'가 탄생합니다. 한 동네에 두 개의 클럽이 생겼으니 자연스럽게 경쟁 심리가 발동했겠죠.

1860년 12월 26일 박싱데이에 열린 두 팀의 첫 맞대결은 역사상 최초의 로컬 더비 매치(지역 라이벌전)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영국 전역의 공장, 학교, 교회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축구 클럽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주말마다 자기가 속한 지역 클럽의 경기를 보며 삶의 애환을 달랬고, 이 끈끈한 공동체 문화가 고스란히 이어져 오늘날의 거대한 축구 클럽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대기업의 후원 없이 아마추어 리그에서 묵묵히 공을 차고 있는 셰필드 FC의 존재는, 축구의 본질이 화려한 돈이 아니라 '함께 모여 공을 차는 즐거움'에 있음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글쓴이의 한마디

오늘날 수천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의 화려한 중계 화면을 보다가, 150년 전 영국의 척박한 겨울날 가죽 공 하나를 두고 규칙을 다투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묘한 아날로그적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가 이 초기 클럽들의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은, 결국 축구를 지탱하는 가장 위대한 힘은 첨단 전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며 경기를 완성하고자 했던 '규칙에 대한 합의'와 '지역 공동체의 애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동네 클럽을 위해 목청 터져라 응원하던 그 서툰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현대 축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요약

  •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인 '셰필드 FC'는 1857년 영국 셰필드 지역의 크리켓 선수들이 겨울 비시즌 동안 체력을 단련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창단했습니다.

  • 초창기에는 통합된 축구 규칙이 없어 지역마다 손 사용 여부나 거친 몸싸움 기준이 달라 경기 때마다 큰 혼란과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 셰필드 FC가 제정한 '셰필드 규칙'은 코너킥, 프리킥, 골대 크로스바 등을 최초로 도입하며 현대 축구 통합 규칙(FA 규정)의 결정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그물이 없던 시절에 벌어진 황당한 오심 사건들과 축구장의 필수 요소가 된 '골대의 규격과 그물망의 발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찾아오겠습니다.


댓글로 소통해요!

만약 오프사이드도 없고 골대 가로대도 없이, 손으로 공을 잡아도 되는 초창기 축구 규칙으로 지금 경기를 한다면 과연 어느 팀이 가장 유리할까요? 여러분의 엉뚱하고 재치 있는 상상을 댓글로 자유롭게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