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로 대회나 월드컵 같은 큰 경기를 보면, 골키퍼의 손을 피해 마구 휘어져 들어가는 축구공의 궤적을 보며 감탄하곤 합니다.
완벽한 구형에 가까운 현대의 축구공은 첨단 공학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축구공은 둥글지도 않았고, 비가 오면 무거워서 머리로 받기조차 무서운 위험한 물건이었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시작과 함께했던 초기 축구공의 거칠고 황당한 진화 이야기를 제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돼지 방광과 가죽 주머니: 둥글지 않았던 초기 축구공
축구의 종가라고 불리는 영국에서 현대적인 축구 규칙이 정립되기 전인 19세기 중반만 해도 공식적인 축구공 제조업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우면서도 공기를 넣어 부풀릴 수 있는 주머니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가축의 '돼지 방광'이었습니다.
동물의 방광에 바람을 불어 넣고 겉을 거친 가죽으로 감싸 꿰매어 쓴 것이 초기 축구공의 정체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축구를 했다면 공을 차는 것 자체가 조금 찝찝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동물의 장기라는 게 규격이 일정할 리가 없었습니다. 돼지의 체구에 따라 공의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바람을 넣어도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 참외나 타원형 모양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패스를 해도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불복 게임이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불규칙성은 축구가 신사적인 스포츠로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찰스 굿이어의 고무 발명: 축구공에 표준을 제시하다
이 어설픈 가축 방광 공의 시대를 끝낸 것은 뜻밖에도 타이어 회사로 유명한 미국의 '찰스 굿이어'였습니다.
1839년 그가 가열 고무 가황 가공법(고무에 유황을 섞어 탄성을 높이는 기술)을 발명하면서 축구공 역사에 일대 혁명이 일어납니다.
1855년, 굿이어는 이 탄성 좋은 고무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고무 튜브 축구공을 만들어 냅니다. 내부를 질긴 고무 주머니로 대체하자 드디어 공의 크기와 형태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축의 장기를 만지지 않아도 된다는 위생적인 장점은 덤이었습니다. 1872년 영국축구협회(FA)는 "축구공은 반드시 구형이어야 하며, 둘레는 27~28인치여야 한다"라는 공식 규정을 발표하는데, 이는 고무 튜브의 발명 덕분에 비로소 가능해진 표준화였습니다.
표준화된 공이 등장하면서 선수들은 드디어 '징검다리 패스'나 '정밀한 슛' 같은 전술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연 가죽 공의 딜레마: 비가 오면 무기로 변했던 공
고무 튜브 위에 두꺼운 천연 소가죽을 덧대어 만든 끈 묶음식 축구공은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축구 무대를 지배했습니다.
예전 클래식 축구 영상을 보면 공 한쪽에 운동화 끈처럼 가죽끈이 길게 묶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내부 고무 튜브에 바람을 넣은 뒤 입구를 봉하기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천연 가죽 공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소가죽은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합니다. 수중전을 치르는 날이면 가죽이 비를 머금어 공의 무게가 처음보다 두 배 가까이 무거워졌습니다.
무거워진 가죽 공에 물을 먹은 단단한 가죽끈 부위로 헤딩을 하다가 목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선수들이 속출했습니다.
날씨에 따라 경기력과 선수의 안전이 좌지우지되는 천연 가죽의 한계는 축구계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기술의 한계를 넘어 현대 축구로 향하는 징검다리
초기의 축구공은 이처럼 주변의 재료를 가공해 쓰던 투박한 소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둥근 공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집념과 고무 가공 기술의 발전이 맞물리면서 축구는 비로소 전술과 기술을 논할 수 있는 현대적인 스포츠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다 똑같은 가죽 덩어리처럼 보였던 초기 축구공의 역사 속에는, 부상을 감수하면서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공을 보내고 싶어 했던 선배 축구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비가 오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던 공을 머리로 받아내던 그 시절의 축구를 상상해 보면, 기술의 발전이 스포츠의 낭만을 얼마나 안전하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핵심 요약
초창기 축구공은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고 가죽을 덧댄 형태여서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모양도 타원형에 가까웠습니다.
1855년 찰스 굿이어가 탄성 고무 튜브를 발명하면서 축구공의 크기와 구형 형태가 공식적으로 표준화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천연 소가죽 공은 비가 오면 수분을 흡수해 무게가 두 배로 늘어났으며, 가죽끈 부위로 헤딩 시 심각한 부상을 유발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흑백 TV 시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점박이 32면체 축구공(텔스타)'이 탄생하게 된 흥미로운 배경과, 현대 월드컵 공 속에 마이크로칩이 들어가게 된 첨단 과학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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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분이 비 오는 날 물을 잔뜩 먹어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1950년대 천연 가죽공으로 헤딩을 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초기 축구공의 황당한 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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